2011. 11. 25.

카이누스, 실명제..


15년..... 정도 온라인 상에서 내 이름은 '카이누스'이다.

여느 고2 남학생마냥 겉멋만 잔뜩 들었던 시기, PC통신 천리안에서 무려 '한글아이디!!'를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왠지 본명쓰기는 싫고해서 나름 겉멋 부려 만들었었다. (이게 말은 아이딘데 실제로는 닉네임이었다. 로그인은 기존의 영문/숫자 아이디로만 가능했고 글 남길 때는 한글아이디로 표기됐으니...)

카인 + 야누스 앞뒤 두글자를 따왔었고 앞으로 만들 모든 계정에도 쓸 생각이었으므로 영문스펠링도 만들었는데 kaynus로 했다.. 입력시 양손을 번갈아 고루쓰는 관계로 ㅡ,.ㅡ;;; 

아무튼 겉멋은 잔뜩 들어가있으니 좋고 내가 조어한 거라서 동일아이디 땜에 xxxx01, xxxx2, xxxx16 같이 숫자나 생년을 붙일 일도 없고 (99년 배틀넷에는 있더라능 ㅡ,.ㅡ;; 트위터랑 쥐메일도 있어서 나름 충격;; 역시 세계는 넓다!) 해서 썼는데 고딩 일기장보면 누구나 손발이 오그라들듯이 언젠가부터 이게 좀 오글거리긴 했다. 그래도 뭐 마땅히 다른 참신한 아이디도 생각안나고 관성이 있어서 쭉 써왔다.

그런데 인터넷 실명제가 어쩌구 할때 욱하는 와중에 '깡' 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잡아갈테면 잡아가라!' 뭐 이런 오기같은게 생겨서 오히려 본명을 쓰고 훼이스북에 프로필도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직접적인 내용 빼고는 나름 철저하게 채워넣었다.

본명을 쓰고나니 좀 민망한 부분도 있긴한데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랄까? 그런데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한다. 온라인에서만 접하던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봤을 때 좀더 서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도 하더라.. 그리고 한국에서 하는 서비스, 외쿡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외쿡인이랑 대화할것도 아니고 한국어로 써보자해서 그런 것도 있다.

다른 SNS서비스에서는 닉네임을 쓰든, 본명을 쓰든 해당서비스에서 지원하는 언어로만 쓰면 딱히 문제는 없는데 유독 구글플러스만 태클이 좀 있는 것 같다. 나야 뭐 처음부터 본명이고 딱히 바꿀 계획은 없지만 글쎄... 

온라인 활동 내지는 집필활동의 묘미 중에 하나가 닉네임으로 인정받는 것일텐데 그런 것을 내부 정책? 으로 태클들어오는 구글을 보고 있자면 얘들은 참.... 

사람들인데 사람 맘을 몰라..

그게 구글의 사랑스러운 점이지만 또 치명적 단점이기도 하지..

라는 생각이 든다...

2011. 11. 24.

망조가 들면...

동양권 역사서에 나라가 망하기 직전을 기술한 내용을 보면


표현과 순서는 조금씩 다른데 종합해보면 대충 이렇다.




1. 아이들이 해괴한 동요를 부른다.


2. 우물이 핏빛으로 물들고 가축들이 이유없이 죽어나간다.


3. 사이비 종교가 나댄다.


4. 사원들이 고리대금업을 한다.


5. 공권력의 기강이 해이해진다.


6. 처녀가 애를 낳는다 = 모랄 해저드


7. 2류 이하의 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고 자기 밥그릇에만 혈안이 된다.


8. 위정자가 국고를 축내고 주색에 빠진다.


9. 여우가 저잣거리에 나타난다


10. 혜성, 지진이 관측된다.


11. 홍수, 가뭄이 번갈아 일어난다. = 자연재해이면서도 치수, 즉 정치의 실패


12.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돌며 통제가 안된다.






대충 생각나는건 이정도...


근데 이거 역사 얘긴데 생생해!! 


눈으로 보는 것 같애!!!!

2011. 11. 20.

PC통신, 커뮤니티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다시 블로그..

컴퓨터를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사용한 것은 아마 93년.. 정도부터였던 것 같다.
인터넷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생경했고 당시에는 PC통신이라고 하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의 서비스가 존재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서비스가 유료로 제공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지만 그 때는 그게 당연했던 시기였다.

아무튼 지금의 어린친구들은 '모뎀은 뭐고 전화선으로 인터넷이 접속된다는게 말이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원래 그게 시작이었다. 01420, 01421로 '이야기' 같은 접속 프로그램을 통해 접속하면 마우스 따위는 필요없는, 도스 명령어 같은 서비스 명령어 만으로 이런저런 활동이 가능했었다. 전화선을 사용하는지라 PC통신에 접속하는 동안은 전화가 불통이었던데다가 서비스 이용료와는 별도로 전화요금이 청구되었기 때문에 필요한 서비스에 정확하고 빠르게 접속해서 장문의 글들은 갈무리해서 다운받아 나중에 읽고 내가 올릴 글도 오프라인 상에서 워드프로세서로 작업한 뒤 신속히 업로드하고 바로 접속을 끊어서 전화요금이 많이 청구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했다.

다행인건 이미지가 서비스된다는게 뉴스에 나올만큼 텍스트로만 구성된 서비스라서 지금처럼 데이터 이용량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개념자체가 없었고 사용시간에 따라 청구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 습관이 잘들었는지 지금도 필요한 페이지에만 접속하고 애매하다 싶은 페이지에는 거의 안들어가기 때문에 각종 악성코드나 바이러스, 해킹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게 생활해왔다.

대략 99년까지 이런 생활을 해왔는데 이때쯤 이메일 서비스라는, 나름 센세이셔널한 인터넷 서비스를 접하게 됐다. 역시 시작은 hanmail.net이었는데 이 이메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써먹을데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시기에는 핸드폰도 폭발적으로 보급되던 시기라서 나같은 학생은 그냥 궁금하거나 알릴 내용이 있으면 그냥 전화거는게 무척이나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메일 주소 가지고 있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았었다. 

프리챌이란 서비스를 접한건 2000년이었다. 이런 서비스에 관심은 있되 적극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관계를 맺고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서는 꽤나 소극적이었던 앞뒤가 안맞는 성격탓에 그냥 그러려니하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주변 지인들이 프리챌로 몰렸다. 그리고 지인들 뿐만 아니라 당시 인터넷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메일은 한메일, 커뮤니티는 프리챌이라는 대세가 형성됐었다. (와중에 한메일이 유료우표.. 뭐 이런 걸로 자폭했는데 이때쯤부터 나는 hotmail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등장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굉장히 유사한 컨셉의 서비스도 제공하는 등, 나름 앞서나가는 서비스였는데 유료화 정책이라는 자폭을 하며 싸이월드의 급성장에 충실한 밑거름이 된다. 바보들... 이후 유료화 정책을 포기하고 다음 팟과 같은 동영상 서비스를 출시하며 재기를 노리나 싶었지만 다음팟, 네이버비디오, 유투브에 밀려 완전히 망해버렸다....

개인적으로 싸이월드는 프리챌이 유료화 전 한창 잘나가던 시점에서 접했는데 나름 아기자기한게 귀엽긴하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 프리챌에 비하면 좀 어려웠던 것도 같았다. 커뮤니티 서비스라는게 지인들이 없으면 이전할 이유가 없는지라 이 때도 친구랑 둘이서 '이런게 있네'이러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프리챌이 유료화로 자폭하면서 대거 싸이월드로 유입됐고 프리챌을 같이 즐기던 지인들이 죄다 싸이월드로 넘어왔다. 그래서 나름 미니홈피도 만들고 클럽도 만들어가며 몇년 놀았다. 

싸이월드가 SK로 넘어가고 각종 미니홈피 아이템 장사를 시작하면서 흥미가 좀 시들해졌다. 아이템을 사서 내가 뿌듯하면 좋겠는데 이게 결국 남들 보기좋으라고 하는 거지 나는 영 별로였다. 아이템들도 영 내 취향은 아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이나 글 등이 좀 큼지막하게 보였으면 좋겠는데 프레임이 너무 작았다. 그리고 06년 즈음부터 내가 오픈 웹이랄지, 다양한 브라우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싸이월드/네이트가 포털 중에 익스플로러외의 다른 브라우저 지원이 가장 괴팍했던 것도 싸이월드 탈퇴의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네이버 블로그였다. 그게 07년 하반기즈음이었던 것같다. 다른거 없었다. 쉬웠다. 플러그 인이니 꾸미기니 뭐 이런거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사진이 큼지막하게 배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굉장히 싫어하는 정책이지만 스크랩하기도 상당히 편했다. 그리고 지식인(무식인이 된지도 꽤 오래전이지만..)이나 까페들을 통해 많은 지식이나 정보들이 네이버로 흡수되었기 때문에 볼거리도 많았다. 그리고 얼마후 진성호의 네이버 점령 선언과 검색어 조작, 네이버의 스크랩을 악용한 닫힌 정책 등이 눈에 들어왔고 09년, 티스토리로 이동했다.

나름 의욕적이었지만... 역시 맨땅에 헤딩은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소홀해지는 것은 금방이더라... 결정적으로 내가 주기적으로 글을 발행하기는 너무나 게으르고 전문성은 커녕 특정 소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때 나타난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참 적절했다.

발랄함과 진지함, 가벼움과 진중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서로 읽고 공감하고 있는게 눈에 보이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장문의 글이 굳이 필요없다는 것도 압박감을 더는데 한몫을 했다.

그렇게 2년여를 보내고나니 왠지 그것도 심드렁하다. 왠지 내 공간이 아니다 싶기도하고... 티스토리에서 어줍잖게나마 글을 쓸 때는 내 공간이라는 마음이 좀 있었는데 그런 기분은 덜하다.

블로거닷컴이 되었든, 티스토리가 되었든 이 공간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얼마나 오래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겟다. 그래도 떠나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하나 정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