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2.

니가 그 시대를 살아봤어? - 역사란..


니가 그 시대를 살아봤어? 아님 닥쳐!

라는 말을 들으면 역사학 전공자로서 쫌 슬프다.

역사학은 과거를 연구한다. 특정 사건을 연구할 때,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료 뿐만 아니라 사건 자체가 언급되지 않더라도 전후 맥락을 알 수있는 사료들도 함께 취합하고 공식적인 문서가 부족하면 인터뷰나 현지 답사도 진행하고 발굴에 의존하기도 한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의 증언과 기록은 매우 중요한 사료지만 그만큼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그 시대에 관해 상세하게 알고 있지만 그만큼 시야가 좁다. 그시대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으며 동시대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의 내용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역사는 그런 것들까지 함께 염두하여 서술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인 서술이 가능하다.
개인의 기억이라는게 소름끼치도록 디테일하기도 하지만 사상과 일생을 거쳐 편견이 개입될 수도 있고 사건 순서가 뒤죽박죽일 공산이 매우 크며 사소한 일담이 영웅의 일화로 둔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월남 스키부대 같은 존재는 꺼리도 안되는 농담 소재지만 역사를 보다보면 이런거 때문에 환장하는 경우가 적잖다..)

역사학이 시간차를 두고 과거를 연구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편견이 개입될 소지를 줄이고, 보다 많은 사료를 모아 그 시대가, 그 사건이 어떻게 벌어지고 진행됐는지를 먼저 객관적으로 서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역사를 두고 어떻게 해석을 할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고, 앞으로 뭘해야하는지는 이후의 문제가 된다.

물론 사료를 취합하고 경위를 설명하는데 역사학자의 편견도 개입될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많은 역사학자가 필요하고 더 풍부한 사료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역사학이 발전하고 역사가 풍부해진다.

후세의 역사가가 평가할 것이다? 역사의 판단에 맡기겠다?

좋은 말이다. 그러면 온전히 그들이 평가하게 놔둬라. 그들이 평가할 수 있도록 증거를 남기라. 그리고 처음부터, 역사에 부끄러울 것 같은 일을 하지마라. 그러면 알아서 좋게 평가해준다.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미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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