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7.

맥북에어


지난 3월 말, 맥북에어를 구입했다.

1)
딱히 랩탑이 "반드시" 필요했다곤 할 수는 없고, 스마트폰과 데스크탑 사이에서 가지고 놀 것이 필요했다.

음악듣고 가끔 캐주얼한 느낌의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웹서핑도 간간히 하고...

이런 '놀이'가 목적이라면 아이패드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타인이 이런 목적의 디바이스를 추천해달라고 했다면 두번 고민하지 않고 아이패드 사라고 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아이패드는 어색하다는 결론 밖에는 나질 않았다. 결국 취향 문젠데, 물리 키보드가 없는, 하지만 스마트폰은 아닌 디바이스로 어케 놀아야할지 계산이 서질 않았다. 아이패드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하는 것도 생각해보긴했는데 가지고 다니기도 번거롭고 역시 그럴거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랩탑이 낫겠다는 최종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별 고민없이... 구형 노트북을 가져오면 할인해준다는 A#의 광고에 낚였고 맥북에어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약 한달여를 사용해봤는데... 좋다. 내 목적에는 딱이다. 들고 다니기에도 적당하고 부팅, 종료도 빠르고 배터리도 한나절 정도는 무리없이 사용가능하고 이런저런 하드웨어 퍼포먼스도 흡족할 수준이고 기본 탑재된 garage band나 iphoto 같은 앱은 물론, 이미지, pdf 뷰어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점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2)
dropbox나 evernote 같은 서비스와의 호환성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고 윈도우에서는 참 애증의 프로그램이었던 아이튠즈도 여기서는 꽤나 좋게보인다. 버벅이지도 않고 대체 뭐가 문제인지 추정조차 안되는 오류도 없어보인다. 결국 윈도우의 아이튠즈는 지워버리고 맥북에서 아이팟 동기화를 하고 있다.

예전같으면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설치해보고 이런저런 커스터마이징도 해보고 그랬을텐데 이번엔 좀 뚱하다. 시스템 글꼴을 바꿔볼까 시도해봤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 영 안먹힌다. 안먹히는 와중에 슬슬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라 더 바꾸려고 용쓸 것 같진 않다. 스마트폰 처음 샀을 때하고 비교해봐도 뭔가 시스템 설정을 건드려보려고 용을 쓰는게 내 습관인데 이번엔 왠지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젠 좀 피곤하기도 하고...

어릴 때야 항상 스펙이 안되는 컴퓨터를 쓰느라 이런저런 시스템 건드리는게 필수코스였는데 이제는 뭐... 베스트는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은 스펙의 컴퓨터를 쓰고 있으니 특별한 오류 없으면 그냥 쓰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그리고 MAC OS의 경우는 저 습관과는 관계없이 시스템 깊은 곳까지 건드리기가 어렵다;; 폰트도 바꾸기 어려우니 말 다했지...

사실 습관보다 이쪽이 더 이유로는 클지도 모르겠다. 터미널 커맨드를 어떻게 입력하고 파일을 바꾸고 그래야하는데.... 도스부터 배운지라 금방 적응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건만 2,3년 전에 우분투 리눅스 써볼 때도 그랬고 한 15년 가까이 커맨드를 안쓰다보니 쉽고 어렵고를 떠나 커맨드 입력 자체가 무척 낯설고 감도 안잡힌다. 지금보다 더 어릴때면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기를 썼을텐데.... 이런식으로 사람이 굳어지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다..

커맨드 입력이야 어떻든 손 안댄 지금 상황에서도 불편하다거나, 너무 느리다거나 하는 증상은 느끼지 못하고 있기에 커스터마이징의 필요성은 더더욱 느끼기 힘들다. 하기사... 음악듣고 영화보고 서핑정도 하는데 굳이 느려질일도 없다.. 그리고 뭐... OS 자체도 굳이 변경해야 할 필요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기도 하다. 낯설기는 하지만 낯선것과 어려운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고 실제로 쓰다보니 그냥 저냥 적응해 가는 것 같다. 한/영 변환키가 달라서 애먹긴 했는데 그마저도 슬슬 적응해가고 있다.

나 자신은 그럭저럭 얼래벌래 적응해가고 있는데 주변에 맥북에어를 실제로 쓰는 사람이 없다보니(아.. 직장에서 업무용으로 지급된 맥북을 쓰는 사람이 한명있긴하구나..근데 이분도 헤매는 중이라고..) 나한테 이것저것 묻는 경우가 많다. 난감한 것은.. 아직 나도 적응중인데 뭘 어찌 설명하겠나... 이럴 땐 그저 이런 저런 루트로 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용기를 마치 내 경험인 양 읊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3)
맥북 자체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는데... 가장 많이 들으면서도 가장 이해가 안되는 질문은 이거다.

"맥북으로는 일하는데 불편하지 않아?"

직장 비품으로 산 게 아닌데 왜 '일'하는데 불편한지 여부를 고려해야하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말하면 "왜 내 돈 주고 내 물건 사는데 일을 고려해야하는가?" 가 되겠다.

직장 생활이란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과 집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한 상황이고 점차 개선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직장을 위해 나와 가정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듯이 여겨지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다고는 해도... 이게 사는건가!!! 개인의 선택마저도 직장 내지는 업무를 고려해야한다는 상황이 너무나 마음에 안든다. 가기싫은 회식에 참석한다거나 상사보다 저렴한 자동차를 타야한다거나하는 것들도 그렇다.

예전에야 정직원이 되면 퇴직할때까지 회사에서 가정의 상당부분을 책임져온 것을 알고 있고 그로 인해 개인이 직장에 헌신하는게 '도리'였다는 것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런데 회사가 조금만 어려워졌다하면 '명예 퇴직'이라는 가면으로 오랜기간 헌신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계약직으로 대충 2년돌리다가 내팽겨치는 현실에서 개인에게 직장에 대한 헌신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정말 헌신한 한둘만이라도 잘 좀 대우해주던가... 그것도 아니고... '가족같은 회사'? 그딴거 필요없다. 어느 가족이 그렇게 제 식구를 막 대하나? 그냥 노동자를 가족에게 돌려보내줘라.

맥북에어 얘기하다가 노동현실까지 오다니.. 이것 참...

4)
다시 돌아와서... 기본적인 우리나라 인터넷, 전자문서 환경이 지나치게 획일화되어 있다는 것은 4, 5년전 파이어폭스를 처음 썼을 때부터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었지만 OS부터 바뀌니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 환경만의 문제는 아닌게 hwp는 맥버전이 없고 사실상 전 세계 표준이라는 MS 오피스마저도 윈도우/맥버전간 기능 차이도 많고 일부 호환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픈 오피스 / 리브레 오피스는 그냥저냥 간단하게는 쓸만하지만 내가 바라지 않는 상황, 즉 이 맥북에어로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왔을 때 이걸 사용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뭐... 적어도 4, 5년 전보다는 웹페이지들은 어떤 브라우져로보든 거의 차이가 없으며 (정부 사이트는 여전하지만..) pdf 내지는 구글 닥스 같은 솔루션으로 협업이나 공유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불편함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맥북에서 윈도우 환경을 만드는게 그렇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그렇게 활용하는 사람도 많고..

하지만 나는 아직은 그런 식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터미널 커맨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까지는 가기도 어렵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나로서는 새로운 OS이니 다양하게 써보고 싶다. 일단은 기본 제공 앱인 garage band, iphoto, imovie 는 잘써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영상은 그냥 그렇고 사진이나 음악 관련해서는 관심도 많았으면서 이런저런 공부나 맨땅에 헤딩은 안해봤는지 자책할 정도로 좋다. 뭐 물론 제대로 써보고 나서 "에잇! 잡스놈!! 날 속였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5)
두달 정도의 소감은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세상사 다 그렇듯 얻는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맥 OS에서 되는게윈도우에서 안되는 것도 있고 윈도우에서는 편한게 맥으로 할때는 무지하게 불편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저 둘이 똑같이 돌아가면 애초에 달리 만들 필요가 없잖겠는가? 그렇게 체험하고 배워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팟 살 때는 그런게 전혀 없었는데 맥북에어를 사고나니 왜케 주변기기가 눈에 들어오는거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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